메타십이지신

에스까페아르 개인전 <메타십이지신전> 전시 포스터

작가노트

두려움과 욕망의 응축
에스까페아르는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내밀하고 원초적인 욕망에 집중하며 초현실적 이중이미지를 그린다. 이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와도 비슷한데 멀리서 쉽게 읽히는 메타이미지는 서로 다른 작은 도상들의 조합으로 만들어 내며 각각 숨은 의미들을 부여해준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메타(Meta)십이지신은 욕망과 두려움으로부터 출발했다. 인간의 욕망은 점점 커져가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점점 황폐화되어 간다. 망가져가는 환경은 더 이상 어찌 할 방법이 없어 우리는 새로운 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를 창조하였다. 나의 십이지신은 메타버스를 지키는 신들이다.
신들의 모양과 상징
나를 비롯한 동시대인들은 수많은 카메라들 속에 감시당하며 살고 있다. 문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우리의 행동은 기록된다. 각 신들의 얼굴은 몬스터볼로 그려졌는데, 이는 포획된 몬스터와 같은 삶을 표현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각각의 신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요소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미래 인간을 구성할 반도체를 표현한 회로판, 우리 민족의 전통을 표현한 빨강-파랑-노랑의 삼색 선, 갈수록 심해지는 피라미드 사회구조를 보여주는 피라미드 벽 등이 그것이다. 또한 그림의 바탕으로 깔리는 세가지 색: Reflex orange, Trefoil, Warm white는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한다.
새롭게 창조된 메타버스 세계 속에서는 지금의 자본주의 속 계층 구조가 더욱 심화된다. 표면만 보자면 접속하는 누구나 동일한 위치에서 시작하게 되지만, 결국 시스템을 창조자와 이를 향유하는 자의 갭은 창조자와 피조물 만큼이나 나게 된다. 더 빠르고 편한 것에 대한 욕망과 인간의 속도로 더 이상 따라잡기 힘들어진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은 어디까지 인간을 밀어붙일까? 지금 소위 메타버스로 불리우는 것은 단지 실시간 온라인 플랫폼의 범용일 뿐. 진정한 메타버스는 오지 않았다.
미륵불을 기다리듯 메타버스를 기다린다.

전시기획

갤러리PLACEMAK3/출처_갤러리플레이스막 인스타
처음 이 공간에 방문하자마자 내 머릿속엔 지하 무덤인 카타콤이 떠올랐다.
강원문화재단 생애 첫 지원’ 사업에 선정되고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시 공간 확보였다. 생애 첫 지원을 받은 만큼 전시는 꼭 서울에서 하고 싶었다. 을지로를 비롯한 여러 갤러리에 연락을 해보던 중 자주 소통하며 지내던 한 작가님으로부터 공간 소개를 받았고 실제 방문해 본 공간은 내 생각 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벽돌 벽, 러프하지만 매끈한 바닥, 방마다 유리문이 있어 공간을 개방하거나 폐쇄할 수 있었던 점이 특히 그러했다. 지하라는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타콤(Catacomb)은 로마시 주위의 지하무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 의미가 확장되어 굴과 방으로 이루어진 모든 시설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공간을 보고 온 뒤로 어떻게 하면 미로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온통 이 생각에 사로잡혔다. 처음에는 친환경 블럭 300장을 구입하여 조립해 진짜 미로를 만들어 볼 생각도 했으나, 예산 문제와 벽으로 인해 자유로운 감상이 방해되는 점 등의 이유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매일 레퍼런스를 찾고 스케치하던 중 비닐하우스가 문득 떠올랐다.
건재상에 찾아가 나무를 골라 길이에 맞게 절단하였다
실내 공간 안에 설치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를 검색해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었다.
직접 농자재 판매상에 가서 나의 기획 의도를 설명해 적당한 사이즈의 아치형 지지대를 찾아냈다. 갤러리로부터 미리 공간 벽과 천장 높이를 제공 받아 놓아 결정에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다니기에 어려움이 없고 쉽게 구부러지지 않아 설치에 용이한 것이 조건이었다.
아치형 지지대가 결정되자 이를 어떤 방식으로 안전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바닥에 세울 것인가가 문제였다. 지지대끼리 연결하거나 줄을 사용하는 방식은 아름답지 못해 처음부터 배제했다. 바닥 자체에 구멍을 뚫을 순 없으니 대신 나무에 구멍을 뚫어 꼽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나무가 너무 크면 전시장까지 운반과 설치가 어렵고 너무 얇으면 쇠로 된 지지대가 서있기 어려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건재상에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돌아오는 답은 ‘직접 해보지 않는 한 본인들도 모르겠다’였다. 결국 나 스스로의 감에 모든 걸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무에 구멍 타공 후 아치형 지지대 첫 결합 테스트
공간에 직접 설치 전 아버지의 도움으로 나무에 구멍을 뚫어 시뮬레이션을 했다.
나무가 너무 크면 전시장까지 운반과 설치가 어렵고 너무 얇으면 쇠로 된 지지대가 서있기 어려웠다. 건재상에 찾아가 자문을 구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직접 해보지 않는 한 본인들도 모르겠다’ 였다. 결국 나 스스로의 감에 모든 걸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80mm 두께의 나무에 수직으로 너무 헐겁지도 빡빡하지도 않게 구멍을 뚫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러 목공방에 문의를 해봤지만 너무 많은 비용을 요구하여 결국 아버지께 SOS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대략적인 직각 표시만 해두고 본인의 감을 이용해 전기 드릴로 금새 뚫어주셨다. 아버지의 연륜과 경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80mm 깊이의 나무에 안정감 있게 바로 서있을 것인가?’ 너무나 긴장된 첫 결합 테스트.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에 너무 짜릿했던 순간이었다.

설치과정

갤러리 실내 모습과 전시 설치를 위한 자재들
전시장 도면과 실제 전시장 내부는 다르기에 여러 차례 방문해 실측해 설치 당일 오차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설치 당일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뿐이었다. 그마저도 서울까지 작품 운송 후 점심 식사를 했어야 해서 실제 설치가 시작된 건 오후 1시부터였다. 탑차에 조심스럽게 실어 온 모든 장비와 자재들을 내리고 본격적인 설치에 들어갔다.
온통 터널 기획와 설치만을 생각하다 막상 작품 배치는 설치 당일 나의 느낌에 따라 결정하게 되었다. 작품을 이 방 저 방 옮겨보면서 공간과 작품의 조화와 분위기를 살폈다. 전시명이 ‘십이지신전’인만큼 십이지신들이 메인에 오도록 배치했고 크고 에너지가 많은 작품들은 두 방에 각각 나눠 배치하게 되었다. 특히 부처상과 닮아 있는 작품<메타마리우폴>은 단독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몰입과 안정감을 주려고 했다.
본격적인 작품 설치에 앞서 배치와 수평 체크 작업
처음으로 콘크리트 벽면을 직접 타공하여 작품을 설치해야 했다.
콘크리트 벽면에 직접 타공(打孔)하여 작품을 설치하는 작업은 장점과 단점이 아주 극명했다. 단점부터 말하자면 벽 타공을 위한 모든 장비와 자재를 모두 준비해 운반해와야 하며, 본인의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무척 큰 장점은 설치에 대한 자유도가 높다는 점이다. 무거운 작품이나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설치도 자유롭게 가능하고 전시 종료 후 작품만 회수하면 복구도 특별히 필요 없다. 본격적인 벽 타공에 앞서 레이저 레벨기로 수평을 맞추고 작업에 들어갔다.

전시전경

방 한 곳에 단독으로 설치된 작품 <메타마리우폴> 설치 전경

작품리스트